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현구 임나일본부설 주장 날조 사건 (문단 편집) === '김현구가 백제가 야마토에 군사원조를 간청했다고 주장'했다는 주장 === >*고구려·백제·신라가 모두 야마토왜에게 원조를 구걸했다고 주장 >“당시 한반도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자국 주도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이전투구(泥田鬪狗)를 전개하고 있었다. 따라서 삼국은 모두 일본에 대해서 군사원조를 요청하거나 적어도 상대국에게 군사원조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저지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삼국 중에서 어느 나라를 파트너로 삼을 것인가 하는 캐스팅 보트는 일본이 쥐고 있었다(김현구,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 29쪽)” > >*백제가 야마토에 군사원조를 간청했다고 주장 >“『일본서기』에는 507년에서 562년 사이에 백제가 야마또정권에 파견한 24회의 사자 중에서 백제의 요구가 명확히 적시되어 있는 경우는 14회라고 되어 있다. 그중에서 임나에 관한 내용은 5회이고 나머지 9회는 전부 원군이나 군수물자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당시 야마또정권과의 관계에서 백제가 일관되게 추구하던 것은 군사원조였다고 볼 수 있다(『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142~143쪽)” 보다시피 '''요청'''이라고 쓰여있는데 '''간청'''이라 해석하고 있다. 그러면 저런 요청이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되나? 이 논리에 따르면 '''[[미국]]은 여러나라가 지배하는 [[괴뢰국]]이 된다.''' 미국은 군사원조 요청한 게 한 두번이 아닌데, 누구도 미국영국부설 이나 [[베트남 전쟁/한국군|미국한국부설]] 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논리적으로 이런 게 성립될 수가 없으니깐. [[김현구]]도 이점을 대놓고 말했다. >"야마또정권과 신라나 고구려의 교류는 각각 왕복 2회에 그쳤고, 임나와의 교류도 왕복 8회에 그친 반면 백제와는 왕복 39회에 이르고 있어 큰 차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백제와의 교류는 그 내용도 대부분 우호적인 관계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스에마쯔가 근거로 삼는 『일본서기』에 의하는 한 적어도 야마또 정권이 임나를 근거지로 백제와 신라를 간접 지배했다는 설은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p.133 >"적어도 『일본서기』에 의한다면 케이따이천황(재위 507~31)이 등장하는 507년에서 임나가 멸망하는 562년 사이의야마또정권과 한반도 각국과의 관계는 일본 학계가 주장하는 것 처럼 임나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백제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백제와의 관계는 특수한 용병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김현구,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p.14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